최초의 시계인 해시계와 물시계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집트에 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43년 해시계 ‘앙부일 구’와 ‘자격루’가 만들어졌다. 서양식 기계시계의 발명 시기는 분 명치 않다. 하지만 이탈리아 시인인 단테가 1320년 완성한『신곡 (La Divina Commedia)』에 시계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파도바 대학의 천문학교수인 지오반니도 1364년 시계에 관련된 저술을 남겼다. 이에 많은 역사가들은 13세기 후반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 장한 이후 14세기에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시계탑’이 설치되면 서 유럽 전역에 확산됐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표기는 언제부터?
현재는 시간을 표기할 때 24시간 표기법이 널리 쓰이지만, 과거에 는 12시간 표기법이 일반적이었다. 캐나다의 엔지니어 샌포드 플레밍은 1876년 어느 날 아일랜드를 방문, 기차를 놓치게 된다. 기 차 시간표에는 기차가 오후에 출발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 기였고, 오전에 이미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이때 플레밍은 12시간 시스템이 기차 시간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24시간 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88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 턴에서 열린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세계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아 전 세계를 24시간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나라는 같지만, 시간은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 시간대로 이루어진 국가도 있지만, 영토가 넓어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나라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넓 은 국가인 러시아는 표준시가 11개나 존재한다. 최서단인 칼리닌 그라드에서 북동부 추코트카는 무려 10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반 면 러시아 못지않게 넓은 중국은 과거 5개의 시간대를 사용했지 만, 1949년 이후부터는 통치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국토 동부에 집 중 되어 있는 인구 등을 고려해 단일 표준시를 사용하게 되었다. 단 일 표준시 사용에 따른 불편함은 지역별로 출근 시간에 차이를 두 는 등의 방법으로 조정하고 있다.
손목시계? 회중시계가 원조!
손목시계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여성용 액세서리에 불 과했다. 1868년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 헝가리의 코스 코비 츠 백작 부인을 위해 금으로 만든 손목시계가 그 시초였다. 그 당 시 남자들은 휴대용 시계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 내 보는 ‘회중시계’를 품격의 상징처럼 여겼다. 우리가 동전 주머 니로 알고 있는 청바지나 조끼의 작은 주머니도 원래 이름은 ‘워치 포켓(Watch Pocket)’으로, 회중시계를 넣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회중시계는 자전거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 중에 시계를 보기에 편리한 손목시계로 조금씩 대체되기 시작했다.
전장(戰場)의 필수품, 손목시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반 병사 역시 지원 포격의 시간 과 돌격 시간을 정확히 숙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긴박한 전장에서 주머니에 넣어둔 회중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넣는 행동은 매 우 위험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따라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장교와 사병들이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손목시계의 보급과 소형화 및 경량화에 힘쓰게 됐다. 전장에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빠르게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손목시계는 군인들의 생존능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목시계는 신사의 휴대품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시계 사랑
서양의 신사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시계를 아끼던 사람들 이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시 계광이었는데, 여러 시계의 알람 소리가 한꺼번에 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 고 종에게 전화로 문안드릴 때에는 덕수궁 시계의 시각을 물어 창덕 궁 시계와 똑같이 맞추기도 했다. 궁 안에는 따로 시계방을 마련하 고 스위스에서 여러 개의 시계를 주문해 국장을 새긴 다음 선물로 하사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거사를 위해 홍구공원으로 떠나던 날 아침에, 아끼던 자신의 6원짜리 시 계를 김구 선생의 2원짜리 시계와 맞바꾸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