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당의 국어학원 원장인 박선호(37)씨의 시드머니는 이 같은 희귀 식 물이다. 지난 2년간 학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처음 에는 그저 취미였다. 개업 화분을 학원의 볕 잘 드는 남동향 창가에서 기르다 재미를 붙였고 얼마 안 가 학원은 식물원처럼 화분으로 빼곡해졌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저 좋아서, 잎이 7장 달린 옐로 몬스테라를 90만 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희 귀 식물을 팔기 시작한 게 예상치 못한 ‘파이프라인’이 됐다. 가드닝 수요 가 급증하면서 전과 비교해 식물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았기 때문이다. 옐 로 몬스테라는 이제 잎 한 장당 보통 200만 원을 웃돈다. 옐로 몬스테라 화분 하나로 3년 만에 약 16배의 수익률을 낸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 잎이 돋아 나면 수익률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는 “학원 운영의 절반 은 학생들이, 절반은 식물들이 지탱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식물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식물에 투자하는 식테크 족도 늘고 있다. 적당한 햇빛, 물, 흙과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준비 끝. 잘 키우면 집에 서 ‘풀 멍’을 하며 힐링하는 동시에 단기간에 수십 배 수익을 올리는 일석이 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녹색 잎에 흰색·노란색 섞인 무늬종이 인기
요즘 재테크용으로 주목받는 식물은 무늬가 있는 희 귀 관엽 식물이다. 일반 몬스테라는 약 1만 원 수준이 지만 흰색이 섞인 몬스테라 알보, 노란색이 섞인 옐 로 몬스테라 같은 무늬종은 잎 한 장에 각각 50만 원, 200만 원을 호가한다. 무늬가 잎에 점점이 박힌 민트 몬스테라는 잎 한 장당 1,000만 원에 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무늬종은 엽록소가 부족해 녹색 대신 흰색이나 노란색 잎이 발현되는 변종이다. 하지만 그만큼 흔치 않고 공급량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대 가 높게 형성된다.
주로 50, 60대가 많이 키우는 다육이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다육이 중에서도 잎 끝이 뾰족해 ‘창’이라 고 불리는 아가보이데스 종류가 인기가 많은데, 관엽식물의 무늬처럼 잎에 흰색, 노란색의 ‘금(금색이 섞인 잎)’이 들어가 있으면 가격이 훌쩍 뛴다. 천안에서 다육이 농장을 운영하는 민병진 ‘다육의 미치다’ 대표는 “다육이는 재테크를 위해 금만 키우는 분들이 많다”며 “금이 들어간 종류에 따라 가격이 적게는 20, 3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까지 나간다”라고 말했다. 몰 게인 금, 프랭크 금, 제이드 스타 금, 스텔라 금 등 이 인기 품종이다.
다육이 재테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도심 외 고가의 화훼 농장에서 운영하는 ‘키핑장’을 활용하는 경 우가 많다. 키핑장은 다육이를 키울 수 있는 대여용 비닐하우스로, 보통 3.3㎡(1평) 당 월 5만 원의 비용을 내고 개인이 사용할 수 있다. 식테크 용도가 아니 더라도 빛이나 통풍, 공간 크기 등의 이유로 집에서 다육이를 잘 키우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사용한다. 다육이는 대체로 크기가 작아 운반이 쉽고 수명이 길 어 한국,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반려식물로 인기가 많다. 창 같은 경우 짧으면 40년, 길면 400 년까지도 생존이 가능하다. 다만 다육이의 경우 조직배양이 수월해 가격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식테크를 할 계획이라면 주의해야 한다. 방울 복랑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방울 복랑금의 인기가 높아지자, 중국이 조직 배양을 통해 시장에 이를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4, 5년 전만 해도 500, 600만 원 하던 가격이 지금 은 40, 50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가격 방어 잘 되는 ‘몬스테라 알보’
반대로 관엽 식물은 다육이와 달리 조직 배양이 어려 워 가격이 안정적이다. 전문가들이 식테크 입문용으로 희귀 관엽 식물인 몬스테라 알보를 추천하는 이유다. 집에서 키우기 비교적 쉽고, 무늬종 중에서 그나마 저렴한 편에 속하며, 결정적으로 가격 방어가 잘 된다. 잎이 크고, 무늬가 잎마다 제각각이라 플랜테리어 용 도로도 유용하다. 박선호 씨는 “희귀 식물인 무늬종 몬 스테라는 잎이 곧 화폐처럼 여겨지고, 그중 몬스테라 알보는 거래량이 워낙 많아 가상화폐 중에서도 비트 코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경기 과천의 화훼·식물 판매장 ‘그린플랫폼’의 김승환 이사는 “식물 시장 역시 수요-공급 원칙에 충실하다” 며 “무늬종은 1만 개 혹은 10만 개 중 1개가 나올 정 도로 희귀한 데다 국내서 많이 찾는 몬스테라, 필로 덴드론, 안스리움이 최근 바나나 뿌리 선충 기주식물로 분류돼 대부분 국가로부터 수입이 금지되면서 가격이 더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이 농장에서 보유 중인, 잎이 10장가량 달린 높이 1m의 ‘필로덴드론 호프 셀럼 바 리 에가타’는 가격만 4,000만 원에 달한다.
희귀 식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건 결국 무늬다. 무늬 가 너무 없어서도 너무 많아서도 안 된다. 6년 전부 터 취미로 식물을 기르는 직장인 하모(41)씨는 “무늬가 너무 심하면 결국 광합성을 못해 죽거나 무늬가 너 무 옅으면 끝내 흐려져 안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르기가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재테크를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값이 비싼 무늬종을 기르기보다는 같은 종류의 일반 식물을 사서 충분히 연습 한 뒤 무늬종에 도전하라”라고 당부했다. 민병진 대표도 “다육이의 종류별 차이를 무시한 채 금만 일괄적으로 모아 놓고 똑같이 물 주고 온도를 관리하다 보면 실 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며 “식테크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 식물의 특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고시장서 개인 간 거래 활발
개인들의 식테크는 보통 잎 한 장에서 시작한다. 몬 스테라 알보를 예로 들면 잎 한 장을 구입해, 물꽃 이를 해서 뿌리가 충분히 내리도록 하고 이를 흙에 심는다. 흙에 잘 적응하면 이후 새순이 나며 안정적으로 자라는데, 그때 잎을 한 장씩 잘라(삽수, 揷穗) 팔면 된다. 실제 당근 마켓과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나 여러 명이 장소를 빌려 비정기적으로 여는 식물 마켓에서 이런 개인 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르지 않고 더 크게 키워 파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수백만 원, 수천만 원대까지 가격이 올라가 는 대신 그만큼 거래 속도가 늦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잘 키운 희귀 식물은 식물 애호가 사이에서 부르 는 게 값이다. 최근 한 식물 마켓에서는 잎 한 장으로 기른 몬스테라 알보가 2,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식물을 기르는 게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식물 투 자’가 주식, 가상화폐와 다른 점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키우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홈가드닝 채널 ‘와일드 엣홈’을 운영하는 30대 직장인 박선화 씨는 “식물은 관엽 식물, 다육 식물, 희귀 식물 등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한 번 빠지면 관심사가 넓어지면서 오래 키우게 되는 것 같다”며 “특히 무늬종의 경우 돌돌 말려 나오는 새순이 펴졌을 때 어떤 무늬를 갖고 있을지 마음 졸이며 키우는 재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보 자는 자신이 없어 작은 식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뿌리가 잘 내린 성체를 사서 기르는 게 더 쉬울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