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직장생활을 수년간 해온 직장인들조차 직위, 직급, 직책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해 잘못 사용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과장, 부장, 팀장’ 등의 호칭에는 ‘직위’, ‘직급’, ‘직책’의 의미가 모두 혼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위’란 조직에서의 위치를 뜻하는 말로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과 같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승진 체계상의 서열을 말한다. 즉, 행 정적인 의미에서 그 사람의 조직 내 위치를 알려주는 말이다.
‘직급’은 직무의 책임 정도가 비슷한 직위를 모아서 나눈 것으로 각 직위의 등급이나 급수를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과장 2년 차’, ‘5급 3호봉’처럼 직 위에 붙는 연차나 호봉, 급수 등이 직급에 해당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인사 카드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공식적인 명함이나 호칭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개념이다.
끝으로 ‘직책’이란 직위와는 별개로 부여되는 개념으로 팀장, 파트장, 실장, CFO, CEO와 같이 직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일컫는 말이다. 때문에 직책 은 직위와 달리 조직개편이 발생하면 언제든 해제될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직장 트렌드 변화하는 직위체계 수직과 수평 사이
기업의 발전은 언제나 조직의 확대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위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위계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직위나 직급, 직 책을 통해 수직적으로 세분화되어 기업 내 일과 인간관계에 질서와 안정성, 책 임감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 러한 기존의 전통적인 체계를 버리고 나 과감히 축소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IT나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비교적 보수 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제조업이나 철 강, 정유업계에서도 ‘호칭 파괴’, ‘직위, 직급 다이어트’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 리고 있다. 우리 현대중공업 그룹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공감해 최근 직위 체 계를 단순화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꾀 하고 있다.
수직적 위계가 주는 장점과 한계점
미국의 인류학자 모튼 프리드(Morton Fried)는 인류의 고 대 사회들이 보편적으로 평등사회에서 서열 사회, 계층 사회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다고 말한다. 정교한 수직적 관계망을 만드는 방식으로 무리나 조직의 크기를 키워왔다는 것이다. 기업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수직적 위계가 일사불란한 명령과 통제를 바탕으로 기 업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여왔다. 노동 집약적인 고대 농 경사 회부터 대량 생산 위주의 근대 자본주의 사회까지 수직적인 상하 관계가 잘 작동할 때 조직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안정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글로벌하고 내/외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시 대에도 이러한 체계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일 수 있을까. 최근 수많은 기업들이 직위나 직급체계의 혁신을 꾀하 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수직적 위계 조직은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결 정하고 아랫사람은 그 명령을 최대한 빠르게 수행하는 조직이다. 위계질서가 뚜렷해 책임 관계가 명확하고 결재라인이 나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강하게 가질 수 있어 제대로만 작 동한다면 기업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들 의 업무 범위와 역할이 광범위할 수밖에 없어 의사결정 속 도가 지연되고 조직의 유연성 또한 떨어져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는 빠른 대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양의 업무를 일정한 품질로 수행하는 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새롭게 전략을 짜고 분석하고 검토를 하는 영역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안들이 보고를 거치면서 필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최종 의사결정이 이뤄질 때쯤에는 이 미 달라진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주요 직급 리더들의 능력이 매우 탁월하기만 하다면 빠른 대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의사결정 속도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개인의 전문 성과 창의성, 다양한 관점에 기반한 협업이 중요해진 현대 경영환경에서 수직적인 상하 관계는 조직의 소통이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피터 드러커는 1988년 에 이미 “위계를 한 단계 거칠 때마다 소통의 잡음이 두 배로 늘어나고,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절반이 사라져 소 통에 취약한 구조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업계 선도기업들, 직위 파괴해 수평적 문화 만들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지난 2019년 대규모 공채 방식을 없애 고 수시 채용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인사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공채를 실시하면서 발생한 조직 내 서열화를 줄이고, 경력직 수시채용을 통해 좀 더 수평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겠 다는 취지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직급 체계를 통합하고 절 대 평가를 도입했으며, 승진 연차를 폐지하는 등의 혁신 또 한 시도하고 있다.
SK그룹은 직급을 파괴해 전 직원에게 ‘매니저’라는 직책을 부여했으며, 임원 직위도 단순화해 상무, 전무를 없애고 부 사장으로 통일했다. 또한 공유 오피스 도입을 통해 누구나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일하는 창의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 력하고 있다. CJ그룹은 2000년부터 국내 처음으로 ‘님’이 란 호칭을 도입해 호칭 파괴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네이버 나 카카오 같은 IT기업의 경우에는 아예 영어 호칭이나 닉네 임을 이름 대신 사용하는 등 위계를 타파하고 수평적인 조 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우리 그룹의 일부 회사들도 최근 기술인력 및 사무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위 체계를 단순화하며 조직 문화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과장, 차장, 부장은 책임매니저로 직위가 통합되었고, 대리는 선임 매니 저, 사원은 매니저로 불리게 됐다.
소위 말하는 업계 선도의 대기업들은 왜 이러한 변화에 주 력하는 것일까. 위 문장에서도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지만 바로 ‘수평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수평적 조직이라고 해서 부작용이나 한계점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빠른 의 사결 정과 유연성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지금의 경영환 경에서 수평적 조직 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로 인식돼 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1의 청년 인재들을 채용하고 육성하기 위해 서도 수평적 조직 문화는 필수적이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넘어서며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밀레니얼 세 대는 우리 사회에서도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는 핵 심 경제인구다. 그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기업의 존속 자체 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나올 정 도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능동적이고, 자기 계발을 통해 스스 로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 하며, 자기 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안정적인 자리보다는 직무 이동을 통해 본인과 조직 모두에게 도 움이 되는 커리어를 키우고 싶어 한다. 업무에 임할 때는 자 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조직 내 소통을 중시한 다. 이들이 중심이 될 앞으로의 기업 문화에 수평적 조직 문 화는 필요조건일 것이다.
수평적 조직에 대한 우려나 오해들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시도하 면서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수평적 조직 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 등이다. 수평적 조직에도 한계나 보완점은 물 론 존재하겠지만 몇 가지 오해들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 수평적 문화는 모호한 개념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수평적 조직’, ‘수평적 문화’, ‘수평적 리 더샵’ 등의 표현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도 채 안 된 일이다. 축적된 기록이나 경험치가 부족한 만 큼 수평적 조직에 대한 정의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해외 글 로벌 기업들이나 실리콘밸리의 성공스토리 등을 수평적 조 직 문화의 성공 사례로 주로 인용하는 것도 아직 국내에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최근에는 다수의 선도기업들이 수평적 문화를 적극 도입해 실천하고 있고, 나아가 권장하고 있다. 수직적이었 던 구조가 조금씩 수평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전환기인 점을 고려할 때, 수평적 문화는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뿐이다.
둘, 조직은 원래 수직적이다?
완전히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인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분류는 어디까지나 개념적인 의미일 뿐 실제로는 그 둘의 중 간 어디쯤에 위치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다들 예상하겠 지만 가장 수직적인 조직은 상명하복으로 정의되는 군대 같은 조직일 것이고, 수평 조직의 극단에 가까운 조직들은 아 마도 관리자급이 없는 신생 벤처기업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유지 중인 체계 속에서의 단점을 보완해가면서 좀 더 나은 문화를 지향하며 수평적으로 때론 수직적으로 변 화하고 있다. ‘조직은 원래 수직적’이라는 생각은 조직을 사 람이나 문화가 중심이 되는 생명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죽은 표나 그림으로만 인식하는 실수다.
셋, 한국 문화에는 맞지 않는다
아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팽배한 이유는 위계질서에 의한 의사결정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 회 전반에 뿌리내린 상명하복 문화로 인해 그와 반대되는 조직 체계나 의사결정 구조는 기성세대에게 아무래도 낯선 느낌이 든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역시 수평적 조직에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전통적 직급체계를 유지하 던 조직이 직위를 파괴할 경우 직책은 없지만 통상 ‘부장’으로 불리던 중간관리자가 ‘팀원’으로 바뀌어 불리게 될 수 있는데, 이때 많은 중간관리자는 직급이 강등된 느낌을 받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평적 조직 문화의 원형을 만든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처음부터 모두 수평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최근 마켓 컬리나 크래프톤처럼 실리콘밸리 수준의 수평 문화 도입을 통해 수직적 위계 없이 크게 성공한 국내 기업들의 사례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조직의 구성 원들이 미래를 위해 변화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변화를 함께 추진한다면 아무리 철옹성 같은 문화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기업 문화에 정답은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시행착 오를 거치면서 수정과 보완이 이뤄질 것이며, 우리 기업의 문화에 알맞게 뿌리내릴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업종 특성상 수직적인 위계와 조직 문화에 무게중심을 크게 두고 있던 우리 그룹도 이제 조금씩 수평 적인 조직 문화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혁신을 문 화로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런 노 력들이 앞으로 다가올 현대중공업 그룹의 새로운 50년에 강력한 경쟁력이자 생존 법칙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