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스마트폰 통제 앱인 쿼스토디오(Qustodio)가 올해 4월 4~14세 사이의 미국, 영국, 스페인 아동 6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이들은 하루 평균 1시간 20분을 틱톡에 사용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영국 앱 전문 매체인 비 즈니스오브 앱스(Business of Apps)에 따르면, 2019년 틱 톡 사용자는 하루 평균 52분을 틱톡에서 보냈다. 페이스북 (37분)과 인스타그램(29분)을 한참 넘는 시간이다.
틱톡은 쇼트폼 동영상 앱의 대표주자다. 전 세계에서 20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고, 월간 활성 이용자(Monthly Active Users, MAU) 수가 8억 명이다. 더욱더 무서운 건 아직 성장 중이라는 점이다. 올해 1분기에만 무려 3억 1,500만 번의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역대 모든 앱을 통틀어 최다 기록이다.
틱톡 사용자의 70%는 MZ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 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 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 다. 쇼트 폼을 이해하기 위해선 틱톡을, 틱톡을 이해하기 위 해서는 MZ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쇼트 폼 영상의 인기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 기 때문이다.
왜 쇼트폼 영상인가?
MZ세대, 특히 Z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배운다. 돌도 안된 아기가 유튜브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누를 줄 알고(천재라 착각하면 안 된다!), 밥 먹을 때는 ‘아기 상어’ 영상이 없으면 입을 열지 않는다. 이들은 세상을 경험하기 전에 ‘시청’을 통해 세상을 ‘습득’하는 세대다. 이미지와 영상이 이들에게는 태초의 언어인 셈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초록창이 아니라 유튜브에 검색하는 것이 이 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MZ세대는 태어나 보니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였다. 하루에 도 봐야 할 것들이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 상황. 본방송 사수 보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책 한 권보다 돈 내고 요약본 1페이지를 구매해 보는 세대다. 이들에게 지루함은 죄악이다. 봐야 할 콘텐츠는 널렸고, 엑기스만 봐도 시간이 부족하다. 투자 시간 대비 효율, 즉 ‘가성비’를 극도로 따지게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세줄 요약 좀’을 달고 살고, 감 정 표현은 ‘움짤(짧은 영상)’ 하나로 끝낸다. 강력하면서 핵 심을 담은 이미지야말로 이들이 원하는 소통 방식이다. 쇼 트폼 영상이 MZ세대와 핏(fit)이 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왜 틱톡인가?
그렇다면 여러 쇼트폼 영상 플랫폼 중에서 왜 틱톡일까? 틱톡이 MZ세대를 사로잡은 건 짧고,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각각 500만 명, 22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국내 대 표 틱톡 커 ‘옐언니’와 ‘댄서 소나’를 만나 열심히 질문한 끝에 얻은 답이다.
① 짧다
‘15초’. 지루할 새 없이 엄지손가락만 쓸어 올리면 콘텐츠가 넘친다. 순간 이목을 잡지 못하면 바로 다음 영상으로 넘어 간다. 옐언니는 “광고처럼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담아야 한 다”며 “트렌드의 변화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 고 했다. 실제로 틱톡 영상의 평균 재생시간은 5~6초. 엑기 스만 원하는 지금 세대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 들에겐 유튜브도 너무 길다.
② 쉽다
스마트폰 하나면 쉽게 흥미로운 영상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 다. 틱톡은 편집 템플릿, 필터, 스티커 등 활용하기 쉬우면서 도 독창적인 영상 제작도구를 제공한다. 카메라를 살 필요 도, 편집용 PC를 구매할 필요도 없다. 넘치는 음원 제공과 음악에 맞춰 영상을 촬영, 제작하는 특징도 MZ세대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틱톡 커 댄서 소나는 “스마트폰도 뮤직비디오처럼 나올 수 있다”라고 장담했다.
② 재미있다
틱톡에는 리믹스(remix), 밈(meme), 챌린지(challenge)로 대표되는 MZ세대의 놀이 문화가 있다. 리믹스는 기 존 음악이나 영상을 다른 스타일로 표현하는 것. 잘라내고 (Ctrl+X), 복사하고(Ctrl+C), 붙여 넣는(Ctrl+V) 디지털 속 성을 활용해 영상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놀이다. 보지도 못한 마이클 잭슨을 모방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리믹스 영 상을 창조하는 게 대표적이다.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에서 최초로 사 용 된 단어다. 유전자가 복제 기능을 통해 세대 간에 전파돼 듯이 문화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자기 복제적 형태를 띤 ‘문 화 전달 단위’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을 밈이라고 불렀다. 하 지만 최근 대중문화계에서는 ‘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파급 력을 가진 재미있는 짤(이미지), 영상, 유행어, 트렌드’를 통 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밈은 틱톡에선 패러디로 주로 활용된다. 최근엔 가수 비의『깡』이 틱톡밈에 다양하 게 활용되는 중이다. 댄서 소나는 “트렌드를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 창의적으로 바꿔 생산하는 놀이 문화, 밈이 틱톡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챌린지는 틱톡의 전파력,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놀이다. 틱톡에선 병뚜껑 따기(#bottlecapchallenge) 부 터 아무 노래 챌린지(#AnysongChallenge)까지 해시태그 (#)를 기반으로 다양한 챌린지가 늘 이어진다. 생산자와 소 비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셈이다.
틱톡이라는 공간에서 MZ세대는 온종일 재미난 영상을 보 고 챌린지에 도전하며 리믹스나 밈을 창조한다. 길지 않다. 딱 15초다. 음악을 들으며 엄지손가락만 움직이면 된다. 틱 톡커 옐언니는 말한다. “밖에 뭐하러 나가요. 이 안에서 세 계 여행도 하고 외국인 친구도 다 만나는데. 쇼트 폼 동영상을 이야기하면서 틱톡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승자가 독식하는 플랫폼 시장의 속성 때문이 다. 최근 틱톡의 인기를 보며 수많은 기업이 쇼트 폼 시장에 도전하고 있지만, 틱톡을 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적극적인 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카피캣’이라 는 오명을 감수하면서 2018년 12월 틱톡을 꼭 닮은 ‘라쏘 (Lasso)’를 출시했지만 적극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 치 못했다. 그러자 잘 나가는 인스타그램에 동영상 플랫폼 ‘IGTV’를 담았다. 10분까지 지원하는 세로 전용 영상 플랫 폼이었지만 역시 대세가 되지 못하고 인스타그램 메인에서 사라졌다. 페이스북은 최근 15초 영상 편집 기능을 갖춘 ‘릴 스(Reels)’를 테스트하며 다시 쇼트 폼 영상 시장을 노크 하는 중이다.
유튜브를 보유한 구글도 쇼트폼 시장을 노리고 있다. 베타 테스트 중인 1분짜리 영상 플랫폼 ‘탄지(Tangi)’는 학습에 초점을 두고 뷰티, 쿠킹, 데코, 예술 등 다양한 ‘How to’ 영 상을 담는 플랫폼이다. 최근엔 유튜브의 다양한 음원 라이 센스를 활용할 수 있는 ‘쇼츠(Short)’를 유튜브 내에 선보이 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짧은 단문 SNS인 트위터도 6 초짜 리 동영상 공유 서비스 ‘바이트(Byte)’를 선보이며 쇼트 폼 시장을 넘보는 중이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는 ‘퀴비(Quibi)’가 등장해 넷 플릭스, 디즈니+, HBO맥스 등 쟁쟁한 강자들 속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10분 이내 퀄리티 영상이 주력이지 만 아직 구독자 확보는 기대 이하다. 국내에서도 쇼트 폼 영상을 노리는 곳이 늘고 있다. 네이버는 블로그용 쇼트 폼 동영상 에디터 ‘모먼트’를 내놨고,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도 10초짜리 동영상 플랫폼 ‘띠잉’을 서비스하고 있다. 카카오도 연내 쇼트 폼 영상서 비 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유튜브’가 영상 플랫폼을 천하 통일 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고퀄리티 롱 폼 콘텐츠로 새롭게 시장을 연 이후, 틱톡이 쇼트 폼 영상으 로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영상 시장의 세분화가 이 뤄지는 중이다. 특히 쇼트 폼 시장은 MZ로 대표되는 미래 소비자를 둘러싼 전쟁이라는 점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포기하기 힘든 곳이다. 무섭게 독주하는 틱톡의 대항마가 등장할 수 있을지, 본격화되는 쇼트 폼 플랫폼 전쟁에 귀추가 주목된다.